선생님들 안녕하십니까?
이번 학기도 거의 모든 교과가 비대면 상황으로 진행되었을 텐데 어떻게 학기를 마무리 지어가는지 궁금합니다. 지난 4월 정기 학술회의에 이어 또 다른 짝수 달인 6월에도 현상학회 콜로키움에 초대하고자 합니다.
러시아에서 망명 온 유대계 프랑스 철학자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1906-1995)의 현상학을 들여다보고자 두 분의 발표자, 김영걸 선생님과 오주리 선생님을 모시고자 합니다. 우리가 레비나스의 철학을 현상학으로 받아들이고자 할 때 주목해야 할 점은 현상학 창시자인 후설의 연구결과를 대부분 거부하면서도 그의 담론하에 타자성의 윤리를 정립한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제일철학으로서 레비나스의 윤리는 기존의 도덕과 윤리를 철저히 해체하고자 하는 ‘반윤리’(Against Ethics)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레비나스 제일철학의 진정한 의도는 윤리의 해체라기보다는 오히려 ‘존재’에 선행하는 윤리를 수립하려는 데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래서 레비나스는 타자와의 윤리적 관계를 ‘얼굴’이라는 용어로 기술하고자 합니다. 언어가 아닌 얼굴이 말한다는 것이지요. 이에 첫 번째 발표자인 외국어대학교의 김영걸 선생님은 “동물도 얼굴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에 답하고자 합니다.
발표자가 제기하는 질문은 “동물은 눈, 코, 주둥이를 모두 가지고 있는데, 이처럼 보이는 얼굴 말고 레비나스가 말하는 의미의 얼굴을 동물도 가졌다고 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동물도 타인으로서 나의 책임에 호소할 수 있는가?”입니다. 레비나스는 이에 명확한 답을 주지는 않았지만, 그의 “너는 결코 죽이지 않을 것이다”라는 도덕적 명령과 텍스트와 대담에서 드러내는 “무익한 고통”(souffrance inutile)과 “상처받을 수 있음”(vulnérabilité)의 개념들을 통해 발표자는 레비나스가 말하는 얼굴 개념의 확장이 동물에게도 가능할 수 있음을 모색해 보고자 합니다.
두 번째 발표자인 가톨릭관동대학교의 오주리 선생님은 “기형도 시의 ‘자기혐오’에 대한 존재론적 연구: 레비나스의 존재론의 관점으로”를 논의하신답니다. 시인이기도 한 발표자가 기형도 문학에 나타난 자기혐오를 어떻게 레비나스의 존재론을 원용해 구명할지 자못 기대됩니다. 자기혐오가 자기 자신, 인생, 운명을 사랑하지 않는 태도로 규정될 때, 레비나스에게 자기혐오의 원인은 존재함 자체에 대한 공포와 죽음이라는, 존재에 대한 부정성이라는 것이지요. 특히 발표자는 레비나스가 타자의 죽음으로부터 타자에 대한 증오와 살의를 읽어낸 점에 주목합니다. 기형도 시인의 자기혐오를 통해서 현대사회에 만연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가 시인 자신에게 전이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한국사회의 약자로서의, 타자의 죽음에 응답하지 못했다는 유죄성이 자기혐오로 전이된 것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기형도 시의 죽음은 타자들과 함께하는 죽음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그의 시는 한국시사에서 가장 심원한 존재론을 보여주었고, 혐오사회가 한 시인의, 요절의 심리적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오늘날 우리에게 혐오사회에 대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6월 행사에 이어 8월에 있을 하계 세미나에서는 우리 시대의 담론을 주도하고 있는 연세대학교 이승종 선생님과 경희대학교 김상준 선생님을 모시고자 합니다. 이 선생님은 최근 동서양 철학을 관통하는

